'직장내 괴롭힘' 법정다툼 2년… 3만6000자 판결문의 교훈

입력 2024-01-16 16:14  



업무와는 무관하게 갈등 관계에 있는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은 부하직원이 그 상사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한 사안을 하나 소개한다(2021나42155).

상사 S(Senior)는 같은 직장에 다니는 자기 배우자와 부하직원 J(Junior) 사이에 남녀관계가 있다고 의심했고, 그 때문에 J와 갈등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S는 J가 출장 보고를 직접 본인에게 하지 않은 사실을 질책하는 과정에서 J에게 고함을 지르고, J가 면담을 녹음하고 있는 것을 발견해 녹음을 지우라고 요구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S와 J 사이에는 가벼운 말다툼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S는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이유로 사업주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았는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원하는 보직을 받지 못한 J는 S와 그 배우자, 사업주를 상대로 위 질책에 몇 가지 사유를 더해 직장 내 괴롭힘과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피해를 주장하며 당국에 진정을 거듭했다. 그리고 종국에는 대상 판결로 귀결된 정신적 손해 배상을 구하는 소를 S와 그 배우자, 그리고 사업주를 상대로 법원에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J 주장을 전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소개한 질책과 관련해서는, 그 질책을 S의 사적 복수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괴롭힘으로 볼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보았다. S는 J 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도 함께 불러서 면담을 진행했고, 고성과 부적절한 언급은 업무 중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이며 심하게 모욕하거나 위협적인 신체 접촉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외에도 양자간 갈등 상황, J의 불성실한 업무 태도 등을 고려할 때, S의 질책이 업무와 무관한 사적 복수를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대상 판결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받으면 신속하고 객관적으로 조사하여 사실 판단을 할 의무가 있는 기업에 몇 가지 시사점을 남긴다.

우선 "직장 내 괴롭힘 판단에서 반복·지속성과 가해자로 지목된 상사의 동기·의도를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이다.

근로기준법과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을 보면, 직장 내 괴롭힘 인정을 위해 가해자(S) 행위의 반복·지속성이나 동기·의도는 필요조건이 아니다. 근로기준법은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면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한다. .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 정의에 명시적으로 열거되지 않았지만, 어떤 사건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그에는 못 미치는 사건으로 만들기도 하는 사정이 있다. 반복·지속성과 동기·의도는 그 중 하나다.

기업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받으면 서로 다른 의식, 경험, 감정, 편견, 사고방식을 지닌 당사자 사이에 업무 중 소통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을 판단하게 된다. 이는 형식적 기준을 적용하거나 기계적 해석을 통해서는 판단할 수 없다. 문제된 사건의 패턴(반복·지속성)과 내면의 작용(동기·의도)에서 추단되는 상호 관계의 질·맥락을 배제하면 온전하게 그 심각성을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판단은 훨씬 어렵고, 부득이 주관적이기도 하니 때로 논란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어렵다고 이 부분을 간과하면 직장 내 괴롭힘 인정 범위는 지나치게 넓어지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좁아지는데, 어느 쪽도 법적 정의나 중용이 아니다.

대상 판결은 이런 직장 내 괴롭힘 사실 판단이 지닌 속성을 잘 보여준다. 법원은 S의 부적절한 처신의 반복·지속성과 동기·의도 뿐만 아니라, 사건 경위(J의 부실한 출장신고와 평소 근무태도)와 같은 관련 정황까지 직장 내 괴롭힘에서 업무의 적정 범위 내인지 폭넓게 고려한다.

기업도 이처럼 겉에 드러난 현상을 넘어 반복·지속성과 동기·의도 등을 살펴 드러난 상호 관계와 맥락을 바탕으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음으로, 대상판결은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부정할 때 따르는 기업의 고충과 그를 다루는 정도(正道)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좀 더 일반화하면, "직장 내 괴롭힘 노동조사에 임하는 기업의 원칙, 접근법,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서로 주장이 엇갈리고 객관적인 증거를 대기 어려운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서 사실 판단을 하면서 기업은 종종 난관에 빠진다. 특히 자기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당사자의 예상되는 반발(소송 제기)과 사후 인사관리까지 고려해야 하므로 기업은 그 판단에 많은 고심을 하게 된다.

일단 기업은 통상 신고자인 피해를 주장하는 직원의 진술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경험상 과민하거나 과장하는 신고자는 흔히 있지만, 아예 없는 일을 조작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조작을 위해 필요한 참고인 진술이나 증거 조작을 실행하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그 뿐 아니라, 사내 약자 지위에 있는 신고자에게는 조작이 드러나면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 추궁이 예상된다. 결국 조작은 함부로 감행할 수 없어 드물고, 신고인은 대개 진정성은 문제가 없다.

나아가, 무엇보다 대상 사건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신고인은 기업의 조치 결과를 지켜본다. 자기가 주장하는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회사가 인정하지 않으면 후속 분쟁이 생길 위험이 매우 크다.

그러나, 기업은 균형을 잡아야 한다. 사실 판단은 공정해야 하고, 갈리는 지점마다 증거를 대조하며 한걸음 한걸음씩 차근차근 이루어져야 한다. 사건에 이른 경위, 당사자 동기를 포함한 제반 사정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에 대한 낙인 효과와 편견이 진실 발견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도 반드시 기억하고 경계해야 한다. 지름길은 없다. 이걸 중용(中庸)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상 판결은 그 판결문 길이가 200자 원고지 매수로 180매 이상이다. 웬만한 단편소설보다 길다. J는 S 배우자의 성희롱까지 문제삼았고, 워낙 J가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주장한 사건이 많기도 했지만, 법원은 J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사건의 발단이 된 배경과 각 주장의 모든 정황을 하나하나 살펴 왜 J 주장이 인정되지 않는지 써내려갔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살피는 이 장문의 대상판결을 읽으면, 그 꼼꼼한 분석과 건조한 문장 뒤에 숨어 있는 법원의 고심, 그리고 J 주장을 전부 받아들이지 않는 판단을 하기까지 부득이 감당해야 했을 만만치 않은 어려움이 엿보인다.

이런 어려움은 기업도 받아들여야 한다. 너무 쉽게, 가볍게 판단하거나 편의적으로 사실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경청하고, 확인하고, 묻고, 뒤집어 보기도 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다 보면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사실 인정이 그렇게 어려워야 하나 좀 억울한 생각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어려운 건 어려운 것이며, 어렵게 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상판결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를 올바로 정착되도록 하기 위한 기업의 역할'을 고민하게 한다.

이 사건은 S와 J 사이에 소개한 작은 소동이 발생한 때로부터 2심 판결까지 총 2년 가까이나 걸렸다. 만만치 않은 기간이다.

그런데 그 결과 무엇이 밝혀졌고 또, 해결되었나? S와 J 둘 중 누가 오피스 빌런인가. 아니 오피스 빌런이기는 한가? 대상 판결은 그저 J의 주장이 고도의 개연성 있게 입증되지 않았다고 할 뿐이다. 둘은 무엇을 위해 그 긴 기간 여전히 같은 직장에 다니며 법원에까지 와서 다툴 수 밖에 없었나.

어쩌면 당사자들에게 이 사건은 자존의 문제였으리라는 점, 그렇다면 물러설 수 없었으리라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 둘이, 그리고 S의 배우자와 사업주가 쓰디쓴 경험, 고단한 시간 외에 대상 판결의 결과 무엇을 얻었을까. 이 모든 전개에 사내 문화를 책임지며 중재자, 심판자로 관여하고 대상 판결 피고가 되기까지 한 사업주는 애초 더 슬기로운 해결책을 낼 길은 없었는가. 길이 있는데 그 길을 가는 것을 가로 막은 장벽이 있다면 무엇인가.

직장 내 괴롭힘 분쟁을 지켜보고 자문하며 항상 고민하는 문제가 대상 판결을 읽으면서도 자연스레 떠오른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 절차, 기업문화, 개인 인식 무엇이 변해야 하나. 혹은 모두 변해야 할까. 줄어들 기미 없어 더욱 많아지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앞으로 대할 수 밖에 없는 기업이 깊이 숙고할 문제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조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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